일요일, 5월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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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40명 이상 살해됐다”…관동대지진 日 공문 새 발견


간토 지역의 지진 관련 작업에 대한 보충 보고서입니다. (사진=일본 한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마이니치신문은 100년 전 발생한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인이 저지른 조선인 학살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일본 공문이 확인됐다고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언론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관동대지진 직후 한국인 약 40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국방부 국방연구소 자료실에서 ‘관동지방 지진 관련 업무 보충자료’를 발견했다.

이 문서는 도쿄 근처 사이타마현 서부 지역의 징집 및 보훈 관리를 담당하는 지방 육군 기관인 구마가야 연대 지구 사령부가 작성하여 1923년 12월 15일에 모기관인 육군성에 제출되었습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중부 간토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 여파로 곳곳에서 통신과 전기가 끊겼고, 당시 일본에는 목조 주택이 많아 곳곳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조선인 학살은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923년 9월 4일, 경찰이 사이타마현 우라와에서 조선인 200여 명을 후카야 경찰서와 혼조 경찰서로 이송하던 중 발생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뿌리고 폭동을 일으켰고, 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새로 발견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구마가야 사령부는 낮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조선인 40여명이 해가 지면 “생존을 노리는 폭도들에 의해 무차별 살해됐다”고 기록했다.

문서에는 이 사건을 ‘선인학살’, ‘추악한 사건’,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구마가야 사령부는 “당시 해가 지면서 낮에 움직일 수 없었던 조선인 40여 명이 모두 살인적인 군중에 의해 살해됐다”며 “밤에 조선인을 수송하면 참상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어요.” ” 그가 썼다.

또한 “한국인에 대한 공격은 없었다. 방화도 없었습니다. 그는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적어 당시 일본 사회에 떠도는 조선인 공격과 방화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보훈회 구마가야 지부장은 조선인에 대한 거짓 소문에 빠진 사람들을 “진실을 모르는 무지한 무리”라고 비난했다.

이는 그동안 학살중심세력으로 알려졌던 보훈대상자들의 재향군인에 대한 인식이 지역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씨는 “조선인 학살이 발생한 것은 확실하지만 집단적 광기나 권력 탄압 등 기존 견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학살 이유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야를 넓혀 학살의 전모를 밝힐 필요가 있다. .

지난해 9월 가나가와현 학살 자료를 분석한 책이 출간되고 사이타마현 학살 실태를 담은 기록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조선인 학살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관동대지진 100주년인 올해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질문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언급과 학살 책임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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